[유관지] "당신은 지금 빚을 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경남 거창군 신원면에 있는 거창사건추모공원에 다녀왔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 부근에 용무가 있어서 갔다가 추모공원도 찾아 본 것입니다.
묘역을 비롯하여 20여 만 평방미터에 자리 잡고 있는 여러 시설들을 천천히 돌아보았 습니다. 마음이 저절로 숙연해졌습니다.
추모공원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전시실에 불이 꺼져 있기에 관리사무실에 가서 “혹시 오늘 휴관하는 날인가요?” 물었습니다. 여직원은 “관람객이 없어서 불을 켜지 않았어요. 전기를 아끼려고요….” 하면서 따라와서 스위치를 올려주고, “다 보시고 나가실 때 이 스위치를 내리거나 저에게 알려주세요.” 했습니다.



얼마 있다가 한 가족이 들어왔는데 개를 데리고 있었습 니다. 망설이다가 애써 웃는 낯을 만들고 그분들에게 다가가서, 이곳은 엄숙한 마음으로 둘러보아야 하는 곳인데 개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은 보기에 좋지 않게 느껴진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관람을 마치고 방명록에 이름을 적은 뒤, “40여 년 전에 이 지역에서 교편 생활을 하였는데 그 때 찾아오지 못해 늘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가 이제 마음의 빚을 조금 갚고 돌아갑니 다.”라고 썼습니다.

방명록에 적은 것과 같이 저는 40여 년 전에 거창읍에 있는 거창고등학교에 서 국어교사 생활을 두어 해 했습니다. 그 때, 양민학살사건 현장에 가 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이야기를 꺼냈더니 여교사 한 분이, “그 험한 데를 어떻게 다녀오려고 하세요?” 했습니다. 그 여교사는 그렇게 말 하면서 얼굴을 내게로 향하고 고개를 두어 번 가로 저었습니다.
사실 그 때는 도로가 대부분 포장되어 있지 않았고, 읍에서 사건현장인 신원면에 가는 버스는 하루에 두 번인가 밖에 없어서 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추모공원 같은 것은 물론 없었고 양민학살 사건의 내용도 자세하게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교감 선생의 이 일을 알게 되었는지 교무실에 단 둘이 있을 때 교감 선생이 어디를 가는 척, 내 옆을 지나가면서 “유 선생이 시간 나는대로 여기저기 찾아다니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거길 꼭 다녀와 야 하겠어요?”하고 대답을 듣지 않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 분들의 은근한 만류도 작용했고, 웬 일인지 켕겨서 가고 싶은 마음을 접어버렸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그때는 사회의 분위기가 그랬습니다.

“이제 마음의 빚을 조금 갚고 돌아갑니다” 하는 것은 진심이었습니다.
이런 큰 비극의 역사 앞에 옷깃을 여미지 않거나 무관심한 것은 역사, 특히 분단의 역사에 빚 을 지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빚이 쌓이면 역사는 언제인가는 아주 비싼 이자를 개인과 시대에 요구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이념 문제로 적잖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것은 분단에 대해 제대로 알리지 않고 가르치지 않은 일의 이자를 치루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평화와 통일 문제에 관심이 없다면 빚을 지는 것이 됩니다.
수고가 동반되지 않은 관심은 진정한 관심이 아닙니다. 평화와 통일을 위한 구체적인 수고가 없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은 혹시 지금 빚을 지고 있지는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