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훈] 탈북 새터민들과 함께 살아가는 훈련




내가 탈북 새터민 학생들을 만나기 시작한 것은 2001년 3월 학기부터였으니 무려 12년이 지나고 있다. 처음 2년 반 동안은 내 강의를 수강하는 탈북 새터민 학생들과 우연히 만나는 경우였다면, 그 이후부터는 ‘통일한마당'이란 탈북 새터민 학생들 중심으로 구성된 동아리의 지도교수로서 지금까지 만나고 있다. 나는 매학기 마다 우연치 않게 내 강의를 수강하는 탈북 새터민 학생들이 반갑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2003년 9월 학기 중 어느 날, 연세대학교에 재학 중인 20여명 탈북 새터민 학생들을 나의 연구실로 초청한 바가 있다.



당시 나의 초청에 대한 그들의 반응은 정확하게 둘로 나뉘었다. 첫째는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는 상황에서 초대해주어서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기꺼이 참석하겠다는 반응이었고, 둘째는 자신은 남한사회에 편입되기 위해서 무던히 노력하고 있는 중인데, 왜 탈북 새터민들의 모임에 참석해야 하는지 불쾌하다는 말과 함께 두 번 다시는 연락하지 말아 달라는 반응이었다. 후자의 반응에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그만큼 열심히 살겠다는 각오의 표현이라고 이해하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내 연구실에 여덟 명의 탈북 새터민 학생들이 최초로 모였는데, 그들 서로 간에도 잘 모르는 처지였다. 그동안 그들은 철저히 은폐된 상태에서 서로에 대해 무관심하게 살았기 때문이다. 학교 당국 역시 이들을 외국인 특례로 뽑기는 했지만, 제대로 학업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거나 격려하는 어떤 시스템을 마련하고 있지는 않았다. 나의 초대로 중간고사 이후 한 번, 기말고사 이후 한 번, 두 번의 식사모임을 가졌던 그들은 정기적으로 만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에 좋다고 했고, 모임의 대표를 뽑기까지 했다.

그 이듬해 2004년 2월 우리는 열네 명의 탈북 새터민 학생들과 두 명의 남한 출신 학생들이 모여 우이동 민박집에서 창립총회와 함께 MT를 가졌고, 그렇게 해서 연세대학교에 ‘통일한마당’이란 동아리가 탄생했다. 이때 나는 자연스레 그들의 지도교수가 되었다. 나는 지도교수로서 세 가지 지도지침을 지켜왔는데, 첫째는 탈북 새터민 학생들을 정치적 이념의 수단으로 되지 않게 하는 것, 둘째는 탈북 새터민 학생들을 종교전파의 기회로 삼지 않게 하는 것, 셋째는 탈북 새터민 학생들을 연구의 대상으로 두지 않게 하는 것이 그것이었다.

탈북 새터민 학생들 지도에 대한 나의 지침은 탈북 새터민들 일반과 관계할 때도 어느 정도 유효하다고 여겨진다. 정치인들이 탈북 새터민들의 인간다운 삶과 남북의 평화통일에 관심을 갖는 것은 좋으나 그들과 관계함으로 자신의 정치적인 입지와 이념을 강화하려는 것은 금물이다. 종교인들이 종교의 가르침대로 탈북 새터민들에게 사랑과 자비를 나누는 것은 좋은 일이나 그들에게 자신의 종교를 전파함으로 자기 종교의 숫자를 늘리려고 하는 것은 금물이다. 공무원이나 학자들이 탈북 새터민들이 잘 정착하는 방안을 진정성 있게 찾는 것은 필요한 일이나 연구비나 연구성과 자체에 우선적인 관심을 두는 것은 금물이다.

현재 남한에는 25,000명 남짓의 탈북 새터민들이 살고 있는데, 그 가운데 1,000여명은 남한을 이탈(탈남)해 제3국(미국, 영국, 카나다, 독일 등)에서 난민으로 살고 있다. 소수이기는 하지만 북한으로 재입국하는 탈북자들조차 있다. 왜 이러한 현상이 생기고 있나? 우리가 그들을 더불어 살아야 할 평등한 형제자매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의 혈세를 소비하는 기생인간이나 자본주의의 경쟁력에 부적합한 인간으로, 또는 문제가 있어 탈북한 범죄자인양 바라보는 편견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탈북 새터민들에 대한 편견이나 이해득실을 떠나 그들을 인간 자체로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