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평화(18. 11. 13)

지난 7월부터 일본 오사카에 와서 사역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한국도 기록적인 폭염이었는데, 이 곳 오사카는 폭염에 더해서 꽤 큰 지진도 있었고, 태풍 피해까지 겹쳐 자연의 섭리를 새삼 실감한 여름이었습니다. 가을로 막 접어든 11월 초에 오사카 조호쿠조선초급학교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얼마전 9월에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께서 다녀가신 곳이고, 축구선수 이영직 선수의 모교이기도 합니다.

밝은 모습으로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학교를 둘러보다가 가슴이 꽉 막히는 것만 같았습니다. 옥상에 올라가 보니 태풍으로 교사의 절반 정도 기와가 날아가서 비닐로 씌워둔 상태였고, 교실 천정이 뚫리고 비가 새서 여기저기 양동이를 받쳐 놓았습니다. 고학년 학생들은 강당으로 옮겨 수업을 하고 있었고, 67년 전에 건축한 오랜 교사의 구석구석마다, 여기는 2018년이 아니라 수십년 전에 세월이 멈춘 듯 한 느낌이었습니다. 더욱이 가까이 보이는 일본인 소학교의 건물과 비교해보니, 너무 부끄러웠고 속에서 치밀어오는 복잡한 심정 때문에 사진으로 담기 조차 민망했습니다. 다행히 기와가 떨어진 곳이 주택가가 아니라 공원이어서 주변에 민폐를 끼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습니다.

식민지 시대와 한국 전쟁, 남북 간의 분단과 체제 경쟁 속에서 만들어진 재일동포 사회의 아픈 역사는, 한반도의 평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조국의 분단은 또 하나의 분단을 이 곳에 낳고, 한반도의 이념 갈등과 적폐는 또 다른 갈등과 적폐로 이어지고, 차별과 억압, 박해 속에서 우리 말과 글을 지키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멈춰진 세월을 강요하는 부끄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남북 간의 공존과 민족 번영을 위한 발걸음이 이 곳 일본땅의 부끄러움도 걷어내는 참 평화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유시경/ 평화통일연대 운영위원, 일본성공회 오사카교구 카와구치교회 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