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자신감이 필요하다 (23.03.09)

한반도의 평화, 남과 북의 평화적인 통일 여정은 남북 당사자들의 문제만 아니라 세계적인 문제라는 인식은 이미 보편화된 상식이다. 세계적인 문제라 할 때 가장 밀접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나라들은 해양 세력의 중심에 미국, 일본이 있고 대륙 세력의 중심에는 중국과 러시아가 있다.

한반도는 오랜 세월 동안 이 두 세력의 각축장이 되어 왔고 이들에 의해서 민족의 운명이 좌우되었다.

그래서 우리에겐 아주 못된 패배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말이 암시하고 있는 것은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특색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주체적으로 감당할 수 없다는 패배 의식의 발로이다.

이와 같은 패배 의식은 아주 엉뚱한 말이 아니다. 역사가 증언하고 있는 실체적 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는 변하고 있고 천만다행도 역사는 한반도의 주인이 남북 8,000만 겨레라는 자의식을 높여가고 있다.

남한은 군사 경제적 측면에서 세계가 무시하지 못할 만큼 성장해 있고 북한은 경제적 최빈국이면서도 전술핵을 보유한 군사 대국이기 때문이다.

역사적 아이러니지만 북한이 전술핵을 소유하지 않았다면 이미 한반도는 절단났을 것이다.

한때 북한의 경제적 침몰이 심히 걱정되던 때가 있었다. 그때 우리는 북한의 경제적 침몰은 곧 한반도의 안보 위기를 동반할 것이라는 필연 때문에 북한이 경제적 침몰을 이겨내고 정상 국가가 되는 것을 희망했고 그것을 우리는 북한의 연착륙이라 불렀다.

북한의 경제적 연착륙은 아직도 진행 중이면서 동시에 요원한 과제다.

미국이 중심이 된 국제적 제재는 북한의 연착륙을 훼방하는 제일 원인이다.

북한의 경제적 연착륙이 아직도 진행 중인 과제라면 한결 더 복잡하고 지난한 연착륙은 북한의 비핵화 문제이다.

미국은 제재를 통해 북한을 비핵화 시킬 수 있다는 것이 철저한 확신이요 정책이지만 우리는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가 지향했던 대로 외교적, 경제적 수단을 동원해서 점진적으로 북한의 연착륙, 즉 북한의 경제 회복과 비핵화를 동시에 이루어 내야 하는 엄중한 민족사적 사명을 부여받고 있다.

미국, 일본의 정책과는 달라도 많이 다른 민족 생존과 번영 정책을 완수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니라는 인식을 훨씬 넘어선 패배 의식이 더 근본적인 문제다.

우리는 미국, 일본의 뜻을 거스를 수 없다는 광범위하고 깊은 패배의 식이 그것이다.

미국의 대북정책이 우리 정부와 거의 같을 때가 있었다. 클링턴 정권 1기 때 국방 장관을 역임했던 페리는 클링턴 집권 2기 때 대북 조정관을 지냈다. 페리는 1994년 영변 핵시설을 공격하자는 대북 강경론자로 널리 알려진 사람이다.

그런데 그가 김대중, 임동원과의 여러 차례 토의를 통해 북한의 연착륙을 위해 외교와 경제력을 동원한 점진적 정책을 입안하는 큰 변화를 주도했다. 그때 페리가 증언한 이야기가 유명하다. 페리 프로세스는 사실상 김대중, 임동원 프로세스이다.

그렇다.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 정책을 우리에게 적합하게 주장하면서 미국을 설득했던 경험이 있다.

할 수 있다. 남북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평화보다 강한 이념은 없고 국익보다 우선하는 외교정책은 있을 수 없다.

우리가 전쟁을 통해 압도적으로 북한을 제압하여 조기에 승리할 수 있다는 신념은 거짓이요, 신화일 뿐이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자신감이 필요하다/ 강경민 평화통일연대 상임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