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의 징검다리(21. 11. 09)

통일은 권력의 문제이다. 우리나라의 통일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바로 이러한 통일의 본질에서 온다. 한 쪽 권력이 사라지거나 혹은 지금의 남북 권력을 합의하여 나누는 방법이 있어야 통일이 되는데, 권력은 원래 나누어 가질 수 없다. 역사를 보면 권력을 가진 상대를 없애기 위해서 수많은 전쟁과 독재자들의 쿠데타가 있었다. 조선시대에도 왕좌를 놓고 형제간의 칼부림도 마다하지 않았다. 1945년 해방 이후 남과 북에는 각각 서로 다른 권력이 엄연히 존재한다. 한반도에서 두 권력은 냉전 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대립하였다. 또 상대 권력을 붕괴시키기 위해서 무력 사용의 전쟁도 마다하지 않았다. 

 1990년에 독일은 전쟁을 치르지 않고 통일을 했다. 내부의 동요에 의해서 동독 체제가 붕괴한 결과가 통일로 나타났다. 즉 동독 정권의 권력 상실 후 다른 체제인 서독에 흡수된 통일이었다.

 통일이 아무리 소원이라도 전쟁을 통한 통일은 안 된다. 사상자가 얼마가 될지 가늠이 되지 않고, 산업과 경제가 완전히 붕괴되는 비극 중의 비극일 것이다. 통일에는 반드시 평화가 붙어야 한다. 예를 들면 ‘평화로운 방법을 통한 통일’, ‘평화를 이루기 위한 통일’, ‘통일 이후에는 평화 체제’ 등이다. 

그런데 여기에 모순이 있다. 권력은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즉 평화로운 방법, 혹은 정의로운 목적을 위해서라도 체제 권력이 자신의 권력을 자발적으로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선거를 통한 평화로운 정권 교체라는 방식에 전 국민들이 합의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조항이 선거를 통해 실현된다. 그런데 통일 문제에서는 남북 정권의 합의를 강제할 방법이 없다. 남북 간의 회담과 합의는 통일 방식과 과정에 대한 합의이지만 자신의 체제에 불리하다고 생각하면 일방적으로 파기해도 강제할 방법이 없다. 남북 관계에 새로운 길을 열었던 7.4 공동성명(1972), 남북기본합의서(1992), 세 차례에 걸친 남북정상회담(2000, 2007, 2018)과 같은 중요한 합의가 통일로까지 이어지지 않은 이유이다. 

통일에 징검다리가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공동 경제이고, 평화 공존이다. 정치적인 통일을 당장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을 잠시 멈추고 이 세계에서 평화롭게 함께 잘 사는 길을 먼저 중간 목표로 삼고, 길을 모색해야 한다. 1990년 이후 세계적으로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된 이후 세계 경제는 하나로 재편되었다. 동유럽 국가들은 물론이고 구소련과 중국, 심지어 미국과 직접 전쟁을 치렀던 베트남까지 이 새로운 세계 경제 체제에 편입되었다. 북한만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세계 경제 질서에 편입되지 않은 국가로 남았다. 북한의 주민들도 생존 욕구는 우리와 똑같고, 경제가 살아나야 한다는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 배상금과 풍부한 지하자원, 수준 높은 노동력 등이 있기 때문에 북한의 경제 부흥의 가능성은 높다. 그러나 현실은 북한의 현 체제 유지와 핵무기로 인한 봉쇄로 체제 개방과 세계 경제 질서에 편입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그렇지만 통일을 위한 첫 과제는 확실하다. 힘이 들어도 남북의 긴밀한 경제 협력을 통해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길을 꾸준히 모색하는 것이다. 그래서 경제의 상호 의존도를 높여서 남북이 공동 경제체제를 이루고, 평화롭게 공존해야 한다. 이것이 한반도 통일의 중간 목표이다.  

 서해안에 가면 배가 갯벌에 올라 앉아 있는 것을 종종 본다. 못 쓰는 배인가 보면 그렇지 않다. 배 안에 그물도 있고, 손질도 되어 있어서 당장이라도 출항할 차비다. 그런데 땅 위에 누워 있으니 배로서는 쓸모가 없다. 그 상태로는 장정 여러 명이 달라붙어도 꼼짝도 안할 테니 은근히 걱정이 된다. 그런데 몇 시간 뒤에 밀물이 들어오면 사정이 달라진다. 동그마니 떠 있던 배가 물 위로 떠올라 두세 명이 슬쩍 밀기만 해도 바다로 향해 나아간다. 밀물 때문이다. 

갯벌에 앉아 있는 배처럼 남북통일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평화와 통일을 꾸준히 준비를 하고 있으면 된다. 역사 속에 밀물이 밀려오면 평화와 통일은 비로소 이루어진다.

권오성/ 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평화통일연대 고문